2025. 4. 22. 18:16ㆍ영화 및 드라마 리뷰
JTBC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가 16화를 끝으로 막을 내렸습니다. 김원석 감독과 임상춘 작가가 함께 만들어낸 이 작품은 단순한 가족 드라마를 넘어, 부모 세대의 삶을 위로하고 찬사하는 헌사 같은 이야기였습니다. 특히 마지막 회에서 애순의 시집 제목이자 드라마의 타이틀이기도 한 '폭싹 속았수다'는 말은, 이 드라마가 전하고자 한 모든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제주 사투리로 완성된 인생 이야기
"폭싹 속았수다"는 사계절에 따라 4부작처럼 구성된 구조로, 각각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상징하는 에피소드가 주인공들의 일생을 천천히 그려냅니다. 애순과 관식의 사랑, 결혼, 자녀 양육, 노후, 그리고 이별까지... 제주도 방언을 중심으로 전개되는 정겨운 대사는 각 세대의 감정을 진하게 자극합니다. 단순히 지역색을 활용한 드라마가 아닌, 그 언어 안에 담긴 뉘앙스와 감정을 제대로 끌어낸 수작이라 할 수 있죠.
관식과 애순의 인생 여정
특히 마지막 회는 관식의 건강 악화와 이별을 중심으로 이야기가 진행됩니다. 평생 가족을 위해 희생했던 관식은 결국 골수암으로 세상을 떠나지만, 그 삶은 불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가족을 사랑했고, 그들의 꿈을 응원했으며, 무엇보다 애순이라는 동반자와 함께했던 시간이야말로 그에게는 가장 소중한 재산이었습니다.
애순 역시 자신의 꿈을 접고 가정을 선택했지만, 그 선택에 후회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삶을 시로 써 내려가며, 스스로의 인생을 인정하고 축복합니다. 그녀의 시집이자 드라마의 마지막 상징이 된 ‘폭싹 속았수다’는 단순히 속았다는 말이 아니라, 인생에 진심으로 몰입했고 그래서 더 아름다웠다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자식들의 성장과 떡밥 회수
자녀인 금명, 은명의 성장도 놓칠 수 없는 포인트입니다. 금명은 스타트업 대표가 되었고, 은명은 프랜차이즈 사장으로 성장했습니다. 부모 세대의 희생 위에서 당당히 일어선 이들은 애순과 관식의 삶이 헛되지 않았음을 보여주죠. 그리고 드라마 곳곳에 배치되었던 다양한 복선과 상징들은 마지막 화에서 거의 완벽하게 회수되어, 시청자들에게 깊은 울림을 남겼습니다.
예컨대 애순의 엄마 ‘광래’와 꼭 닮은 시집 편집장 클로이의 등장은 환생을 암시하는 듯했고, 특조밥, 트리, 정미인, 학식의 고백, 임영웅의 팬 계정 등 세심하게 심어둔 디테일들이 모두 자연스럽게 엮이며 완성도를 높였습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드라마는 묻습니다. ‘가족이란 무엇인가.’ 피가 섞였기 때문이 아니라, 함께한 시간이 쌓여서 만들어지는 관계, 서로를 걱정하고 희생하며 살아온 시간들이 가족의 정의임을 보여줍니다. 단지 부모 세대만을 향한 위로가 아니라, 앞으로 살아갈 세대에게도 울림을 주는 메시지입니다.
결론 – 다시 보기 어려운, 그러나 오래 남는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는 한 번 보기로는 부족할 정도로 많은 상징과 감정을 담고 있지만, 또 너무 눈물이 나서 쉽게 다시 보기 어려운 드라마이기도 합니다. 그만큼 감정의 깊이가 진했고, 모든 인물의 인생이 존중받아야 할 서사로 자리매김했습니다.
부모님의 삶을 떠올리게 하고, 나의 삶을 돌아보게 하며, 자식으로서 그리고 앞으로의 부모로서의 모습을 되새기게 만드는 이야기. 그 어떤 드라마보다도 진심이 담겨 있었기에 더 찬란했던 작품. 우리가 ‘폭싹 속았다’고 느끼는 순간, 사실은 가장 깊이 사랑하고 있었음을 보여준 드라마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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